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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쓰는 월터

서울의 봄을 보고 (선과 악 그 사이의 딜레마)

월터리 2023. 12. 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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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서울의 봄'을 보러 갔다.
돈을 아낀다는 명목하에 영화관람비도 아끼다가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봤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CGV를 갔다.
코로나 때 건물엔 공실도 많았고 영화관에 사람도 한적했는데
오늘 가보니 공실이 다 채워져 있었고 영화관에 사람도 많았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왔다.
분노와 착잡함이 공존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나 반란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국방부장관이 처음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상황파악을 지시하고 대응을 해줬다면,
투스타 전두환을 쓰리스타가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계급자로서 훈계하고 컨트롤해 줬다면,
30사단장이 전화를 받고 마음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행주대교를 차단해 줬다면,
아니, 그냥 군인으로서의 원칙만 지켜졌다면,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분노와 착잡함을 곱씹으면서 그 사이에서 나오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집에 와서 12·12 사태 이후의 영상들을 찾아봤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전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오랑 소령 등
군인으로서의 원칙을 고수한 사람들은 고초를 겪다가 돌아가시고
 
전두환과 하나회 반란군은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다 누리다 죽는다.
아니, 40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장수하고 계시단다.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장군들만 반란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방부장관과 다수의 장군들이 상당히 무기력하게 그려진다.
 
영화에서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그런 것으로 믿고 싶다.
실제로도 그랬으리라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군복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스타가 가지는 무게감이 엄청나다는 것을.
군대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라 명령에 따라 산도 옮긴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자신의 목숨 부지에 여념이 없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니 당연한가 싶으면서도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집에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시 군인이었다면 하나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뿌리칠 수 있었을까?
쿠데타 당시 반란군에 협조하라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었을까?
 
스무 살의 나였다면 무슨 소리! 당연히 맞서 싸웠지!
라고 외쳤을 것이다.
근데 지금의 나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사회생활 꼴랑 몇 년 해놓고 벌써 때가 탔나 보다.
 
영화 마지막에 이태신 장군이 자신의 군대를 모조리 모아서
전두광이 있는 30 경비단으로 출정하기 직전에
자신의 부인과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이태신 장군 스스로도 두려움과 남겨질 부인에 대한 걱정으로
울먹이며 마지막 통화를 한다.
 
나도 부인과 자식을 두고 내가 가진 것을 두고
그런 원칙을 고수할 수 있었을까.
 
전두환과 반란군을 비난하려면 적어도 나중에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도 장태완, 김진기, 전병주 장군, 김오랑 중령처럼 행동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실패하면 반란, 성공하면 혁명아닙니까!"
혁명이 되어버린 이미 지나버린 역사 앞에서
 
마음속에서 씁쓸함만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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