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중독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추천 : ★★★☆☆
장점 : 우리가 왜 걱정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리고 강박적인 중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당신뿐이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은 안도하게 된다.
단점 :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다는 해결책이 부족하다. 걱정 중독의 원인을 분석한 논문에 가까운 느낌이다.
표지를 넘기면 이 글부터 시작한다.
총기로 자살한 사람 대부분이 머리에 총구를 겨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만큼 뇌는 우리 인간의 가장 뛰어난 기능을 하는 신체기관이지만
너무 뛰어난 탓일까.
도저히 컨트롤되지 않는 기관인 듯 하다.
나도 태생이 늘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다.
사소한 것에도 내가 괜히 상대방을 불쾌하게 한 게 아닐까.
실수한 게 아닐까. 뒤돌아서 고민하거나 심지어 괴로워할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마지막으로 나올 때
이미 집 밖을 나와서도 문이 제대로 잠겼을까
다시 한 번 올라가서 확인할 때가 종종 있다.
회사에서는 내 서류에 오류가 있지 않을까
수시로 걱정을 하면서 여러 번 본다.
(그래도 늘 실수는 나오긴 하더라)
걱정은 주로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 의 구조를 띈다.
한 번 시작하면 짧게 끝나는 법이 없고
확실한 다른 주의를 끄는 대상이 없는 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뇌를 제외한 어느 기관도
왠만하면 우리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걱정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걸까.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강박적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걱정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적, 역사적으로 우리가 과거보다 왜 더 걱정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지 설명한다.
37~38페이지에 아주 잘 요약되어있다.
인류는 약 20만 년 동안 유목민으로 살았다.
사는 데 필요한 몇 안 되는 것들을 매일 새롭게 마련해야 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으므로, 수확물 저장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미리 계획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완전히 무의미했다.
모두가 평등하거나 계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자의식이 아무리 발달한 사람이라도 불평할 것이 거의 없었다.
명상 수련이나 몽환적 자아 초월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을 테다.
그들은 이미 현재를 살고 있었다.
미래 지평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
우리는 수십만 년짜리 핵폐기물 저장 계획을 세우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계좌를 개설한다.
10년 또는 그보다 오래 교육 시스템을 거쳐 수많은 직업 기회를 얻고
물질적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삼는 계층구조에 진입하며, 결국 그에 따라 평가된다.
막해한 선택 기회가 우리의 삶을 너무 심하게 바꿔놓는 바람에,
부자들은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데만 매일 200개가 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든 결정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면서 잘못 결정하고, 실패하고, 나락에 떨어질 위험이 생겼고,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졌다.
선진국일수록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분업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은 전세계 부의 급진적인 성장을 가져다줬다.
모두가 굶주릴 필요가 없고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분업화는 인간에게 요구하는 개인의 능력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규격화된 노동을 수행하기위해 창의성이 결여된 교육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사용 설명서를 읽고 작동할 수는 있지만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를 사용한다.
현대인을 지금 당장 무인도나 밀림숲 한 가운데 떨어뜨려놓으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문명화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자신이 만들거나 직접 수렵 채집해야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 수명도 더 짧았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모든 걸 해냄으로써 자신의 노동을 자신이 기획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기 힘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컸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잉여생산물이라는 개념이 발생했다.
그 전까지는 모두가 똑같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무려 20만년을 살았으니
농업시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인간의 두뇌는 미래를 걱정하도록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잉여생산물과 재산의 축적이라는 개념이 발생하면서
사람 간에 차이가 발생했다. 즉, 상호 간 비교가 가능해졌다.
또 농업을 위해 정착을 하면서 공동체 개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누적된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
친구들의 삶을 더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 집에 계속 살 수 있을까?
채무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까?
여름에 휴가를 갈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의 가치가 위태로워진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인식할까?
현대 사회에서 걱정이 많은 것은 구조적 문제이다.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은 비정상이 아니며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이것이 과도하여 '고통'이 되도록 두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걱정과 불안은 억제할 수록 더 강력해진다.
억누르려는 시도는 가장 역효과만 발생할 뿐이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포츠로 몸을 피곤하게 하거나 TV를 보거나 독서나 명상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잠시 주의를 돌리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다.
두번째 방법은 불안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다.
체념하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 감정, 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자아가 아니고 우리의 정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인상과 경험에 따라 작용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행동뿐이다.
'가치 있는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심리학 용어부터 철학자의 이름 및 여러 사상들이 소개되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걱정에 대한 본질적 궁굼증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조금 더 쉽게 읽히지 않을까싶다.